2010년 3월 27일 토요일

김연아

 밴쿠버 올림픽 피켜 프리 스케이팅 경기가 열리던 날, 나도 하던 일은 그만두고 옆 공장의 휴게실에서 TV로 생중계를 지켜보았다. 시간이 멈춰선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이 끝나고, 끝내 눈물을 흘리는 김연아를 보고 나도 울컥했다. 옆에 같이 보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도 그냥 눈물을 흘려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 쟨 대체 우리가 해 준게 뭐가 있다고, 저렇게 잘 해 버리냐."

 우리 멋대로 피겨 여왕 등극을 기대하네, 한국 최초로 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노리네 하며 저 어린애에게 바윗돌같은 부담을 얹어주지 않았던가.

 방금 피겨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의 프리 스케이팅이 끝난 모양이다. 딴 거 하느라 경기는 안 보고 네이버 스포츠 들어가서 결과만 확인했다. 이번 연기도 그다지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당장 넘어지는 화면이 "2010 피겨 세계선수권"메인페이지에 떠 있으니.

 헤드라인을 보니 토가 나올 것 같다. "최악의 결과, 김연아, 무엇이 문제였나", "'거쉰의 마지막 인사'로 명예 회복 나선다", "역전드라마? 집중력·승부근성 회복이 관건"... 관심 가져주는 건 좋지만 기사 제목들이 전부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인생 최대의 목표를 이룬 뒤에 바로 또 다른 것을 노리는 것은 다 큰 어른도 하기 힘든 일인데, 이제 김연아 좀 내버려 둬라. 우리는 밴쿠버의 드라마를 본 것 만으로도 충분하잖냐.

2009년 3월 22일 일요일

에덴의 용

에덴의 용에덴의 용 - 8점
칼 세이건 지음, 임지원 옮김/사이언스북스

 

 도서관 서가에서 꽂혀 있던 이 책을 우연히 뽑아들었다. 최근 읽은 책이 전부 소설이어서, 과학과 관련된 책으로 소설에 물린(?) 머리를 풀어보기로 했다. 더군다나 그 책의 저자가 칼 세이건이니 더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으랴.

 

 '에덴의 용'의 첫부분인 1장의 제목은 "우주력"이다. 빅 뱅 이론에 따른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오늘날까지의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했을 때, 최초의 인간이 나타난 시기가 12월 31일 오후 10시 30분경이고, 그 이후 1시간 30분동안이 우주의 1년 중 인간의 역사가 차지하는 부분이다.

 칼 세이건은 이 짧은 인류의 진화 기간 동안, 인류가 다른 생물로부터 어떻게 진화했으며,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인 '지적 능력'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4장 "메타포로서의 에덴"이다. 이 장에서는 에덴 동산의 신화 속에서 인류의 발달 과정을 찾아낸다. 앞 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인간의 지적 능력, 특히 선악의 구별과 같은 추상적 사고 능력은 주로 신피질의 발달에서 기원하는데, 이 발달 과정 속에서 뇌의 용적이 커지게 되었고, 자연히 두개골의 부피도 커지게 되었다.

 태아의 두개골의 부피가 커짐에 따라 여성의 골반은 태아를 출산하기에 알맞은 형태로 변형되었으며, 또한 인간은 많은 동물 중 유일하게 출산 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는 성경 속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구분하는 능력'을 갖게 됨과 동시에 하나님이 여성에게 출산의 고통을 부여했다는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 외에 5장에서는 침팬지, 돌고래 등과 같이 지적 수준이 뛰어난 동물들이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갖출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례를 들어 보이며 '지적 생명체'의 경계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기도 하고, 6장에서는 인간이 꿈 속에서 겪는 것들이 진화 이전 파충류 시절의 의식과 비슷하고, 또 그때의 습성이 무의식 중에 돌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과감한 주장도 한다.

 

 책의 말미인 8장에 이르러서는 인간 지능의 진화 방향을 가늠해 본다. 뇌의 특정 부분을 억제하거나 활성화시키는 신경화학 물질의 개발, 인지적 또는 지적인 인공장치의 뇌 삽입 등의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본 뒤, 지적인 인간과 지적인 기계 사이의 협력이 인간 지능의 역사에서 다음에 다가올 주요 구조적 발달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9장은 칼 세이건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의 평생의 주제인 외계 지적 생명체에 대한 탐사를 화두로 꺼내며, 외계 문명과의 접촉이 사춘기에 접어든 인류 문명의 자기 파괴 위험을 피해갈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 지식 그 자체를 위해 지식을 얻고자 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사이비 과학을 경계한다. 마지막으로 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과학=지식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인용구를 언급하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비록 1970년대에 쓰여진 책이긴 하나, 칼 세이건의 통찰력과 상상력, 어려운 지식을 흥미롭게 풀어놓는 글 솜씨는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랜만에 접한 과학 서적으로서, 즐거운 지적 여행을 한 기분이다.

http://nobita.textcube.com2009-03-21T23:06:060.3810

2009년 3월 2일 월요일

프랑스 고교 철학

프랑스 고교철학 4프랑스 고교철학 4 - 8점
앙드레 베르제/드 니 위스망 지음, 남기영 옮김/삼협종합출판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대비용 철학 서적이다.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권은 "인간학, 철학, 형이상학", 2권은 "인간과 세계", 3권은 "지식과 이성", 4권은 "실천과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권의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특정 주제에 관하여 다양한 철학적 의견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험 대비용 책임 만큼 각 장의 마지막에 생각해 볼 문제, 연습 문제를 수록해 두었다. 이런 구성 때문에 각 철학자의 의견을 쉽게 비교, 대조해 볼 수 있고, 철학적 사고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익히기에 좋은 책이다.

http://nobita.textcube.com2009-03-02T14:12:470.3810

2009년 3월 1일 일요일

은하철도 999


 113편이나 되는 <은하철도 999>의 정주행을 마쳤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이라는 주제곡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는 이 애니를, 얼마 전 EBS 방송을 본 것을 계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게 됐다.

 이 작품이 제작된 것이 1978년이니, 3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작화가 낡아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사실 그것마저도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어디 하나 빼놓을 데 없는 수작이다. 은하철도의 각 정차역마다 엿보이는 상상력, 각 회마다 던져지는 의미심장한 메세지들...
 <은하철도 999>를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만화라고만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단면을 만화경처럼 펼쳐 놓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음이 너무 상냥한 사람들이 약육강식의 자연 상태를 견디지 못해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 철갑을 씌워 버리자 생태계의 순환고리가 끊겨 행성이 전멸해 버렸다든지,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자기 행성의 흙을 전부 파내 팔아버리는 바람에 원래의 자연 환경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행성 등 인간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만들어낸 세상이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보여준다.
 또한 주인공 철이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으나, 돈이 없어 표를 구입하지 못해 철이의 열차표를 노리는 인물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사랑에 슬퍼하는 사람들,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 좌절하는 사람들,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해적 등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그 긴 여행의 끝에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유한한 생명을 가지는 보통 인간으로 남기를 선택한다. 감정 없는 영원한 삶보다는 희로애락을 가진, 짧은 인간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철이는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도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의 여행과 다르지 않다. 때로는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고, 세상의 질서에 눈을 뜨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나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인간이라면... 철이와 함께 유년기의 성장을 되짚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간 때우기가 될 것이다.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마스터 키튼

마스터 키튼 18마스터 키튼 18 - 10점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가쓰시카 호쿠세이 스토리/대원씨아이(만화)

http://nobita.textcube.com2009-02-22T00:30:190.31010
 고고학 연구를 꿈꾸고 있으나 매번 대학 강사, 교수의 자리를 거절당하고, 오히려 부업인 보험조사원 업무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다이치 키튼. 그가 보험조사원으로서 겪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놓은 만화이다.

 만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냉전 질서가 해체된 1990년대이다. 독일이 통일되었고, 소련도 해체되었으며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도 붕괴되었으나, 냉전 시대의 유령이 아직 세계 각지를 떠돌고 있다. 따라서 만화 속에는 구 소련의 KGB 요원, 차우셰스쿠의 수하들, 구 동독의 비밀경찰 등이 과거의 영광을 다시 얻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도 하고, 냉전 시대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매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또한 90년대 초반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의 세일즈맨이 그를 '경제 동물'취급하는 서양인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며 화해하기도 하고, 세월이 흘러 도태될 위기에 놓인 포도주 농장의 주인이 자신과 함께 포도주를 만드는 데 일생을 바쳤던 집사와 함께 다시 한번 농장을 일으킬 결심을 하는 등, 당시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래서 <마스터 키튼>은 90년대 초중반의 스산한 모습을 보여주는 시대극이기도 하다.

 또한 SAS(Special Air Service)의 서바이벌 교관이면서 고고인류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설정 답게, 총과 칼 등을 무기로 삼는 적들에 맞서 그때그때 그 자리에 있는 사물을 이용하여 적에게 대항하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작은 유적에서 그에 얽힌 사연을 말해주는 주인공 키튼은 무척 매력적인 인물이다.
 역사학자이면서 다른 방면(특히 군사적인 능력)에도 능통한 것은 <은하영웅전설>의 양 웬리와도 닮았다. 둘 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조금 서툴다는 것마저도. 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쪽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매력적인 인물과 배경 설정, 그리고 매 에피소드마다 색다른 재미와 지식, 감동을 선사해 주는, 명품(Masterpiece)이라고 불러도 전혀 아깝지 않은 만화이다.

 (단점을 지적하자면, 제책 방식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원작의 그림과 달리 좌우 반전이 되어 있어 어색한 부분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과, 몇몇 여성의 나체가 등장하는 장면을 어설프게 가림처리 한 점, 자주 등장하는 번역상의 오류가 되겠다.)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차(車)를 샀다는 것의 의미

 나의 활동 범위, 운반 능력 확장되었다. 이제 나는 수 km 밖에 떨어진 도서관과 영화관을 마음만 먹으면 몇 분 안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집에 갈 때에도 옷가지와 책 중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놓아두고 가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차에 다 싣고 가면 되니까.

 

 이 세상 안에 움직이는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였다. 예전 특기교육을 받을 때, 진혁이 형이 술을 마시고서는 혼자 자기 차 시동을 켜 놓고 앉아서 음악을 듣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그 때 형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이해한다. 형은 갑갑한 숙소에서 벗어나, 위에 올라타 문만 잠그면 다른 사람이 합법적으로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안에서 듣는 음악은 얼마나 달콤한 맛이었을까!

 어제 산 카팩을 차에 꽂고, 내 iPod을 연결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도로를 달릴 때, 나도 그때의 진혁이 형과 조금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나만의 시간표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기다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버스 시간표와 지하철 시간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을 계산하여, 적당한 시간에 키를 꽂고 엑셀러레이터를 밟기만 하면 된다.

 

 '자동차 소유자, 운전자'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나는 도로 위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보행자가 아니다. 내게는 보행자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예전엔 마티즈 I, 마티즈 II, 뉴 마티즈를 구분하지 못하였다. 연비가 어떻고, 계기판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자동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차의 스펙, 개발 중인 컨셉트카의 디자인에 호기심이 일고 있다.

 

 내 생활을 영위하는 데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되었고, 더 많은 석유를 사용하게 되었다. 지구는 좀 더 빨리 더워질 것이고, 석유는 조금 더 빨리 고갈될 것이다.